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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문학을 옹호하고 민족 문학의 건립을 주창한 순수서정시의 시인 전통적 서정성을 현대시에 계승,발전시킨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이다

하늘로 날을듯이 길게 뽑은 부연끝 풍경이 운다
처마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 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 고풍의상 중에서

시인 조지훈의 시 세계의 본령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아와 자연의 동질성에서 찾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지훈은 1939년 일제 말기 최고의 문예지인 [문장]을 통해 시단에 등장한 시인으로 전통적 서정성을 현대시에 계승, 발전시킨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이다. 제재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문화와 자연 관조, 선(禪) 취미 등을 채택한 것이라든가 시형과 시어에 있어서 고아한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시세계가 한국문학의 전통(지속성)에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지훈의 초기 시는 유년기에서 청소년기에 이르는 동안 조선 전통의 서당식 교육과 학교 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그 자신의 문학수업을 통해 획득한 서구문학의 영향 속에서 출발한다. 지훈이 도달한 근원적인 힘이란 사실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시 속에서 전통문화, 민족정서, 불교와 선미 등 여러 가지 형태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순수서정시의 시인. 조지훈그러나 그것은 모두 [자연]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작품의 근원적 세계인 [자연]이란 좁게는 순수한 대상적 자연을 가리키는 것 이지만, 넓게는 그가 체험한 삶 전체를 포괄하는 자연인 셈이다. 이 [자연]은 그의 시 속에서 때로는 순수한 대상적 자연으로, 또 때로는 전통문화나 민족정서로 혹은 불교적 선미 등으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특히 이 [자연]은 그의 정신세계를 끊임없이 괴롭혀온 자아의 문제와 결합되면서 역사의식의 문제로 확대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아에 대한 응시는 곧 [자연]에 이르기 위한 것이고 자연에 대한 관조는 다시 자아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순수서정시와 민족문학의 건설을 지향하는 그의 문학관에 비춰보면, 그가 자연을 통해 탐구한 자아의 내용은 한편으로는 인간,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 자연은 자아의 배후에 존재하는 거대한 근원적인 질서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지훈은 청록파 시인이라는 유파적 명칭을 얻은 시인으로, 순수문학을 옹호하고 민족 문학의 건립을 주창한 순수서정시의 시인이다.

민족의 신화를 시로 표현한 조지훈

조지훈(1920-1968)은 이미 생전에 우리 시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세상을 떠난 후에는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신화처럼 자리잡고 있는 시인이다. 새삼스럽게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해 보는 일이 참으로 가당치 않은 느낌마저 든다.지훈이 약관 19세의 몸으로 시단에 등단한 것은 1939년 [문장]을 통해서였는데 이때의 추천 위원은 시인 정지용이었다. 지훈의 데뷔 작품인 [고풍의상], [승무], [봉황수] 등은 한결같이 뛰어난 천분(天分)과 기교가 조화된 작품으로, 한 시인의 초기 작품의 차원을 벗어나서 이름 그대로 그의 출세작이 되고 또 대표작이 되었다. 일제에 의한 조선어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풍전등화 같던 모국어의 운명을 지훈 혼자서 담당하게 되는 역사적인 운명이 데뷔 당시에 이미 부여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 '승무' 전문

지훈이 젊은 나이에 도달한 모국어의 시적 성취는 그 후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여전히 압권이다.

지훈의 시적 생애는 원숙한 경지에서 실험적 경지로 또 현실적 경지로 옮겨갔다. 다른 시인들에 비하면 역코스를 진행해 갔으므로 개인사적인 측면으로 볼 때는 불행한 감이 없지 않으나, 우리의 시문학사적인 측면으로 볼 때는 매우 희귀하고 값진 바 또한 적지 않다.

[고풍의상] [승무] [봉황수] 등 고전적 아름다움과 품격담긴 시 발표

식민 치하의 시공(時空)을 살면서 그가 무엇보다도 절실히 느낀 것은 아마도 모국어의 따뜻한 숨결이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 시에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품격을 부여한 시인이다. 해방된 조국의 국민에게 사랑 받는 시인이 될 것을 미리 예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든 거미줄 친 옥좌(玉座) 우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십품(從十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 '봉황수' 전문

유장하게 흐르는 [봉황수]의 율조 속에 담겨 있는 비극적인 결연한 어조는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도 미래를 꿈꾸는 봉황의 큰 뜻을 은연중에 담고 있다. 시인은 머지않아 이민족의 손아귀를 벗어날 [푸르른 하늘]을 노래하였다.

지훈의 이와 같은 비장미(悲壯美) 넘치는 어조는 바로 우리 겨레의 은근한 기다림과 인내의 결실과도 맞닿아 있어서, 개인의 천분 만을 노래했던 많은 시인들과 구별된다. 민족의 역사적 인식을 천부적으로 타고난 시인이 아니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뛰어난 높이에 도달하고 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열 아홉, 스무 살의 나이에 그러한 천부적 역사 인식이 가능했을까. 한국의 현대시라는 장르가 소월과 지용을 거치면서 이제 막 자리잡아 가고 있던 형성기에, 어떻게 지훈은 가장 오래 남아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될 수 있는 '시(詩)'로 발견해 낼 수 있었을까.물론 이것은 그의 천부적인 자질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 겨레의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시사에 이름을 남긴 시인들이 그들의 특수한 개인적 체험을 형상화한 데 비하여 지훈은 만해와 더불어 우리 겨레의 신화적 진실을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로 형상화하였다. 시인 조지훈이 이 땅에 살았다는 사실을 우리 겨레의 행운으로 껴안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해방 후에 곧바로 시단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지도자적인 시인으로 자리잡게 되고 때로는 좌파와 대결하고 때로는 독재 정치와 대결하면서 마침내 지사(志士) 또는 마지막 선비라는 호칭도 받았지만, 그러나 그에 대한 영원한 호칭은 '시인'이었다고 해야 옳다.지훈의 시를 가리켜 자연과 인공의 극치라고 말한 사람은 정지용이다. 자연이라고 한 말은 지훈 시에 등장하는 복고적이며 조선적인 풍물을 두고 한 말이었지만 지훈 시의 '자연'은 우리 민족어의 근원이요 민족 신화의 모태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된다. 인공이라고 한 말은 율조의 유려함과 형태미의 완벽성을 지칭한 말이었지만, 이것은 곧 지훈 시가 본래부터 지녔던 고전미, 즉 광범위하게 읽혀지고 애송되어 민족시 또는 국민시로 자리잡게 되는 지훈 시의 운명적 진로를 의미한 말로 이해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시의 운명과 시인의 운명은 동일한 것일까. 지훈 시의 화려한 성취는 곧 시인 조지훈의 성공적 생애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을 염두에 둘 때 나는 곤혹감을 느낀다. 데뷔작이 시인의 대표작이 되는 일은 흔히 있으며 또 이런 경우에는 그 시인의 시세계의 협소함을 뜻하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으나 유독 지훈의 경우에는 유별난 의미가 부여된다.

해방 후 좌파, 독재 정치와 대결하여 '마지막 선비'라는 호칭 얻어

데뷔작이 대표작이 되고 국민시가 되는 이 화려한 가치 부여의 한켠에는 조지훈이 길지 않은 생애가 민족 분단과 전화(戰禍)와 독재 정치라는 예술과 현실의 대립적 구도 속에서 훼손되고 노래되어 온 안타까움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이미 생전에 문학사적 위치를 확고히 차지하고 또 이승을 떠나서는 가장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추앙되는 조지훈은 우리 겨레가 애송하는 주옥같은 작품에 의하여 마침내 '국민 시인'이라는 빛나는 월계관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 생전에 쌓아올린 지사적 풍모나 학자적 양심을 예술 그 자체에 용해시켜 좀더 많은 작품을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 정말로 크다.

지훈을 두고 박목월은'크고도 섬세한 손'이라고 했다. 역사 인식을 뚜렷이 하는 거대한 안목과 섬세한 서정의 실마리를 다듬은 서정 시인으로서의 면목을 가리킨 말이다. '지나가는 자여, 발길을 멈추게나. 지훈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섬세한 이슬방울처럼 크고 높은 솟대처럼 우리 민족의 꿈길에 불멸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으므로…' - 글쓴이 : 오탁번 / 1943년생, 고려대 영문과와 국문과 졸업, 현재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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